본군은 고구려(高句麗)시대에 금물노군(今勿奴郡) 일명 만노군(萬弩郡) 혹(或) 이르기를 수지(首知) 신지(新知)라 하였으며 신라(新羅)때에는 흑양군(黑壤郡)이라 고치고 그 후 황양군(黃壤郡)이라 하였다. 고려(高麗) 초에 이르러 강주(降州)라 한 후 다시 진주(鎭州)라 개칭하고 성종(成宗)때 자사(刺使)를 두었다가 목종(穆宗)에 이르러 이를 파(罷)하였으며 현종(顯宗) 때에는 청주(淸州)에 속하였다. 고종(高宗) 때에 와서 창의현(彰義縣)이라 바꾸고 현령을 두었다가 원종(元宗) 때에 의령(義寧)이라 하고 군사(軍事)를 두었다가 조선(朝鮮) 때 와서 상산(常山)이라 고치고 그 후 진천(鎭川) 감무(監務)로 바꾸었다. 조선(朝鮮) 태종(太宗) 13년(1413) 계사년(癸巳年)에 진천(鎭川)으로 개명, 현감을 두었다가 그 후 연산군(燕山君) 11년(1505) 을축년(乙丑年)에 일시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중종(中宗) 초에 다시 충청도에 환원, 고종(高宗) 32년(1895) 5월 26일 칙령 98호로 현감을 두었던 것을 군수를 두게하였다.
부령 제111호로 부군 폐합시 경기도 죽산군의 가척리와 동주리가 본군 만승면 광혜원리와 실원리에 편입되었고 동년 3월 9일에 면의 개칭 및 구역 변경 시 14개면을 진천, 덕산, 초평, 문백, 백곡, 이월, 만승 7개 면으로 통합
조선총독부령 제9호에 의하여 청원군 북이면 용기리, 용산리, 은암리, 진암리 등 4개 리가 본군 초평면에 편입
진천면이 진천읍으로 승격되어 1읍 6면으로 되었음.
진천군조례 제776호에 의거 덕산면 상신리, 이월면 송두리, 가산리가 진천읍으로, 덕산면 중석리가 초평면으로, 만승면 내촌리, 사당리가 이월면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진천군조례 제1676호에 의거 만승면이 광혜원면으로 명칭 변경되었음.
덕산면에서 덕산읍으로 승격
고구려 | 통일신라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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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물노군 | 흑양군 | 진주 | 진천현(군) | 진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