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of Bells 수집(蒐集)의 “蒐”는 풀 속에 귀신이 숨어있는 모양이고, 꼬리를 숨기며 사라지는 귀신들을 다시 현세로 끌어 모으는 것이 수집이라는데 사실 수집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귀신에 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조선 정조 때 학자 유한준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감상하게 되며, 감상하다 보면 수집하게 되니, 수집은 그냥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김태익. 2013.7.22. 조선일보 만물상 “ 미술과 탐욕”에서) 그래서 5년 전 진천종박물관에서 저에게 전시 요청을 하였을 때, 기꺼이 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집했던 종들의 그 동안 저희 수중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기에, 그 종들은 그들의 청아한 소리를 날려 보내고 싶을 것이고 때로는 그들의 잘난 얼굴을 보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92년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우연히 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돌아가긴 어머니의 수집품들을 판매하던 미국 아주머니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의 모습을 한 도자기 종을 보고 처음 마음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국 후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이나 교회 종을 제외하고는 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백화점이나 풍물시장에서 볼 수 있는 워낭종이나 장식품 도자기 종, 또는 외국 여행길에 눈에 띄었던 기념품 종을 사는 정도였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는 저의 종 수집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어쩌다가 마주친 오랜 전통의 미국 종수집가협회(ABA, American Bell Association)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종에 미친 많은 아마추어 수집가들이 멋지고 다양한 수집품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종에 미친 매니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종에 대한 역사와 지식을 기록한 전문서적들을 접하고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 회원들의 열정에 정말 감동했기에 저도 배운 사람답게 무었을 제대로 알고 그 바탕 위에서 종을 수집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10,000시간 이상을 투자하면 어느 분야에서든지 수준급에 도달한다고 하였는데, 저의 종에 대한 사랑은 이 정도이상의 시간과 노력은 투자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저의 수집품은 지난 4년간의 전시회에 소개되었던 종들을 제외한 제가 가장 아끼는 종( The World of My Favorite Bells)들입니다. 페르시아 루리스탄 청동종, 로마시대의 종, 중국의 고대 종과 같은 우리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한 생활 속의 종에서 마음껏 치장한 은제(sterling) 티벨(Tea Bell), 하인이나 집사를 호출하는데 사용되었던 사치스런 장식의 유럽의 데스크종, 절제된 인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인물종, 그 나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동서양의 아름다운 청동 조각종. 전 세계의 도자기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자기들의 명예를 걸고 만든 아름다운 도자기종,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된 기념종, 19세기 프랑스 플린트 유리종 등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집”은 사라져 가는 물건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살려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 인간의 육체가 명멸하지 않게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하는 의사로서 살아왔으니, 영혼이 사라지는 그 무엇에 다시 혼을 불어 넣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보다 더 사명감을 가지고 해 볼 수 있는 유쾌한 일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조그만 전시회를 통하여 한 개의 종을 만드는 데 자기의 모든 능력과 정성을 모두 부어넣었던 장인들의 숭고한 프로정신을 발굴해내고, 그 엄숙한 뜻을 다른 분들에게 알려드릴 수 있다면 커다란 보람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종을 하나하나씩 모으는데 들였던 열정, 마음에 드는 종을 너무나 쉽고 싼 값으로 구하였을 때의 희열감, 미사여구에 속아 가짜 종을 구입한 후의 씁쓰레함 모두가 저의 종속에 각인되어 남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저의 집착에 가까운 종 수집을 도와주는 모든 분들, 아끼는 소장품을 기꺼이 전해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표시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수집한 종들의 맵시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은은하고 청아한 종소리를 소개할 기회를 만들어주신 진천종박물관 원보현 학예사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은빛 감사의 종소리를 다시 한번 보내드립니다. 2013.10 하정희 / 이재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