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브리콜뢰르>-한국 현대판화의 담론을 위한 제안
전시 기간
1부 : 2011년 11월 22일 ~ 2012년 1월 11일
2부 : 2012년 1월 13일 ~ 2012년 3월 4일
참여 작가 :
1부 (유용한 변형) :
김 효, 김현숙, 김창수, 신명규, 신수진, 유희경, 이주은, 정상곤, 정헌조, 장양희, 최성욱 (11명)
2부 (아우라를 향하여) :
권오신, 김동기, 김미로, 김영훈, 김홍식, 김현주, 남천우, 방인희, 배남경, 이서미, 최인호 (11명)
이번 전시는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이 개관을 준비하면서 열었던 <2010 한국현대판화의 知天命 - 성찰>展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다. 지난 성찰展이 전시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지천명을 넘긴 50대 이상의 작가들로 구성된 것에 반해 이번 전시는 그보다 약간 젊은 세대인 30대~40대의 판화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연령대별 구분으로 전시가 기획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나이 순서에 따른 전시 기획이 한 시대의 특징을 적절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구분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담론을 담을 수 있는 분류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화가 한국 땅에서 순수 예술 매체로서 인식되기 시작된 후 지천명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작가들의 예술적 성과를 한자리에 모아 보았던 지난 성찰展은 한국현대판화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려보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번에 열리는 <감각의 브리콜뢰르 : 한국현대판화의 담론을 위한 제안>은 판화에 있어서 이미 형성된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고 규격화 된 틀을 넘어서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젊은 연령대의 작가 군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것 자체가 유용하다. 신체 나이가 젊다는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물리적인 제 조건들을 전시 내용에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으로의 파급 또한 용이하기 때문이다.
<감각의 브리콜뢰르 : 한국현대판화의 담론을 위한 제안>展은 지금 현재 판화 영역에서 활동하는 현재진행형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판화의 고유한 특성보다는 판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둔다. 동시대 시각예술의 한 영역으로서 판화의 개념과 영역을 재정의 하고자 하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물질, 공간, 시간 등과 같은 작업 환경과 물리적 요소들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시대성을 적극적으로 그들의 작품세계에 반영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보는 것은, 판화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판화 매체가 처한 여러 가지 한계 상황들을 헤쳐 나가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판화가 열린 매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시 제목에 사용한 브리콜라주(bricolage)란 용어는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 또는 ‘수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말로써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 그의 저서《야생의 사고》에서 부족사회의 지적 활동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사용한 개념이다. 브리콜라주를 수행하는 사람을 브리콜뢰르라 하며 그들은 원시부족사회에서 문화 담당자의 역할을 한다. 부족사회의 브리콜뢰르는 한정된 자료와 용구를 가지고 작업해야 하는 한계를 지녔음에도 그가 이전에 산출한 물건들의 잉여분을 가지고 변통하는 법을 통해 넓은 범위에 걸쳐 다양한 일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종전의 목적이 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수단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와 재료는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즉 그들은 모든 것을 잠재적인 관계 속에 위치시키고 그 재료들의 집합들을 검토하면서 그의 당면 과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일일이 재료들과 대화하게 된다. 브리콜라주 개념은 한국 현대판화의 발전 모델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도전 정신을 보여준다. 브리콜뢰르의 유연한 사고와 실험 정신은, 판화가 인쇄물 혹은 회화의 복제품을 만들어내던 과거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순수 미술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나아가 동시대의 시각예술로서 가치를 창출하고자 할 때 필요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판화란 무엇이며 그 경계는 어디까지이고 또 작가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모색하고자 할 때, 판화의 모든 가능성을 대상으로 그것들의 잠재적 관계들을 열린 구조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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