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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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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년신도비
  • 분류비지정문화유산 >
  • 거주지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산 35-2
  • 지정비지정 문화재
  • 시대조선시대(정조)
  • 규모높이 1.96m, 폭 0.75m, 두께 0.35m
  • 재료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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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조선후기의 문신 남연년의 묘소어귀에 세운 신도비로 방형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얹었으며, 주위에는 철제 보호난간을 둘렀다.

비제는 '증좌찬성행청주진영장시충장공신도비명(贈左贊成行淸州鎭營將諡忠壯公神道碑明)'이며, 4면비로 비문은 이재(李縡)가 지었고, 윤시동(尹蓍東)이 글을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전서를 썼다.

남연년(1653∼1728)은 의령이 본관이고, 호가 문암이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박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 이인좌 난때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란군들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고 1792년(정조 16)에 숭선군(崇善君)으로 책봉되었고 정려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거기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박병화(朴秉化)씨가 입고 있는 옷으로 갈아 입는 한편 이 흥직(李興稷)씨가 지고 있는 지게를 달라고 하여 그 지게를 지고 농부로 위장 보리밭에 숨어 있다가 시마사끼 상등병 등 3명의 헌병을 습격시 마사끼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2명은 도주하였다.

청주 표충사에 배향되었으며, 본래 묘소는 음성군 신거리(新居里)에 있었으나 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 자료 : 英祖實錄, 燃藜室記述, 忠北遺蹟·遺物地名表(1985, 충북대학교박물관), 鎭川郡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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