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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부자효자문
  • 분류비지정문화유산 >
  • 거주지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산11
  • 지정비지정 문화유산
  • 시대조선 성종대(成宗代)
  • 규모2평(맞배지붕)
  • 재료목조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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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이 정문(旌門)은 최유경(崔有慶)・최사흥(崔士興)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최유경(1343~1413) 은 고려 말기에서부터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자(字)는 경지(慶之) 호(號)는 죽정(竹亭), 시호(諡號)는 평도(平度)로 청주 다율리(多栗里 : 현 대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민왕대(恭愍王代)에 사헌장령(司憲掌令) 우왕대(瑀王代)에 전법총랑(典法摠郞), 양광도(楊廣道) 안렴사(按廉使)를 거쳐서 농민에 대한 시폐(時弊)를 시정하고, 우왕이 요동(遼東) 정벌군을 출발시킬 때 서북면(西北面) 전운사(轉運使)로 찰방(察訪)을 겸하였다.

최영(崔營)이 물려난 뒤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고,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자 원종공신(原從公臣)에 책록(冊錄)되고, 경기, 충청도 도체찰사(都體察使)를 거쳐 경기우도(京畿右道) 관찰사(觀察使)를 지냈다.

태종(太宗)이 즉위하자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어 사신(使臣)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판한성부사(判漢成府事)에 보직되었다가 사직하였다.

관직을 떠나 현 초평면 죽정리로 내려와 죽정(竹亭)이라 자호(自號)하고 한가로이 지내다가 태종 13년(1413) 71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친상을 당하여 6년간의 묘막생활(墓幕生活)을 하고도 슬픔을 씻지 못하였다한다.

그의 아들 역시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병석에 눕자 자기의 허벅지를 베어 봉양하는 등 부자(父子)의 효행이 조정(朝廷)에 알려져 성종께서 정문(旌門) 창건을 명하였다.

정문은 정면(正面) 2간(間), 측면(側面) 1간(間)으로 되어 있다.

※ 자료 : ①[國史大事典] (下) ②[文化遺蹟總攬] ③[文化財調書] ④[文化遺蹟總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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