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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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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순 효자문
  • 분류비지정문화유산 >
  • 거주지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19 (석박)
  • 지정비지정 문화재
  • 시대1971. 6. 6 건립
  • 규모3평, 맞배지붕
  • 재료목조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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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이 효자문(孝子門)은 조선(朝鮮) 헌종(憲宗) 14년(1848)에 태어나 순종(純宗) 3년(1909)에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일생을 마친 서한순(徐翰淳)의 효행을 길이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71년 6월 6일에 건립한 효자정문(孝子旌門)이다.

서 공(徐 公)은 본관이 달성(達成)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절바르고 웃어른에 대한 공 경심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평생을 부모에 대한 효성으로 보냈다.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마저 도 거르는 때가 많았으나 부모님에 대한 봉양(奉養)은 게을리 하지 않고 부친이 병상에 눕게 되자 갖가지 약을 구하여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으니 혹한(酷寒)도 아랑곳 않고 매일 목욕 재계하고 하늘에 치성을 드리며 시탕(侍湯) 간병(看病)한 결과 20여일만에 완쾌되니 인근에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후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매일 성묘하고 곡(哭)을 하며 시묘(侍 墓) 3년으로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후 지방의 유림(儒林)들의 건의로 효자문(孝子門)을 세우도록 품신(稟信)하였으나 조선 조 말엽의 혼란과 외세침략으로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입지 못한 채 내려오다 1971년 에서야 지방 유림들이 당시의 감사(監事), 현감(縣監)등의 표창장을 자료로 효자정문(孝子旌 門)을 세우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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