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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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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사충문
  • 분류비지정문화유산 >
  • 거주지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775-1
  • 지정비지정 문화재
  • 시대조선(朝鮮) 영조(英祖) 12년(1736)
  • 규모2평 맞배지붕
  • 재료목조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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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이 정문은 충신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천주(金天柱)와 그의 아우 천장(天章), 아들 성추(聲秋),조카 성옥(聲玉) 등 4명의 일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영조 4년(1728) 이인좌(李麟佐)가 난(亂)을 일으켜 청주와 진천을 함락시켰을 때 이지경(李之景)이 이 자칭 진천현감(鎭川縣監)이 되어 백성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때 사석리(士石里) 여사(如沙)마을에 거주하던 김천주(金天柱), 천장(天章)형제가 자질(子姪) 성추(聲秋) 성옥(聲玉) 과 함께 의거할 뜻을 세우고 동지를 규합(糾合)하여 무기도 없이 농기구인 괭이·쇠스랑등을 메고 진천현을 탈환하기 위하여 습격하였으나 중과부적 (衆寡不敵)으로 패배하여 전사하였다.

이같은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국왕은 정문을 내리고 향제(享祭)케 하였으며, 그 뒤 그의 자질(子姪)인 성추 성옥도 고종(高宗) 22년(1885)에 병정(倂旌)케 하므로써 사충문(四忠門)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들이 싸울 때 쇠스랑으로 용전(勇戰)했다하여 속칭 [쇠스랑]충신이라고도 한다. 이 정문은 맛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그 규모는 2평 정도로 되어 있으며 1958년에 개축(改築) 하였다.

※ 자료 : [文化財調書] [文化遺蹟總攬]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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