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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원 효자문
분류
비지정문화유산 >
거주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39
지정
비지정 문화재
시대
조선 헌종 9년(1843)
규모
2평 맞배지붕
재료
목조 기와집
관련 이미지
상세내용
이 정문(旌門)은 조선(朝鮮)시대 효자(孝子) 유희원(柳希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유희원은 문화유씨(文化柳氏)로 1769년 기후사(候使) 유인수(柳仁修)의 후손인 사범(師範)공의 아들로 문백면 파재(文白面)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拒逆)한 일이 없고 부친이 노환(老患)으로 눕게 되자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얼음 속에서 잉어를 잡아 드리고 하늘에 기도(祈禱)하여 지성으로 시탕(侍湯) 간병(看病)하여 완쾌시키니 널리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를 시기한 어떤 사람이 오히려 그가 불효막심(不孝莫甚)하다고 관가에 고발하자 마침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이 고장을 지나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집을 살피던 중 갑자기 위독(危篤)해진 아버지 병을 고치고자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 피를 받아 아버지께 드리는 것을 목격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효자라고 칭송하니 크게 감탄하여 임금님께 사실을 고하므로써 효행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별세하자 3년동안 죽만 먹으면서 아침 저녁으로 산소옆에서 곡(哭)을 하며 시묘(侍墓)를 살아 모든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 뒤 유림(儒林)들이 효자문 건립을 관찰사(觀察使)에게 건의하였고 헌종(憲宗)이 왕명을 내려 효자정문(孝子旌門)을 세웠으니 헌종(憲宗) 9년(1843)에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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