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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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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순 효자문
  • 분류비지정문화유산 >
  • 거주지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 398-6
  • 지정비지정 문화재
  • 시대조선 순조4년(1804)
  • 규모2평 팔작지붕
  • 재료목조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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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이 정문(旌門)은 조선(朝鮮)시대 효자(孝子) 유언순(兪彦淳)(1715~174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효자정문(孝子旌門)이다. 유언순은 본관(本貫)이 기계(杞溪)요 자(字)는 경명(景明) 호(號)는 태소재(太素齋)이다.

일찌기 생모(生母)를 여의고 계모(繼母) 슬하에서 자랐는 데 어려서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가세(家勢)가 빈한하여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함에도 주경야독(晝耕夜讀)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계모에게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물어서 살핌은 물론 항상 돌아오면 반드시 뵙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의 계모가 병으로 눕게 되자 몸소 머리를 감겨 드리고 이를 잡아드리며 밤낮으로 간병(看病)하여 앉아서 목침(木枕)으로 이마를 고이고 잠을 자니 양미간(兩眉間)이 모두 벗겨졌다.

또한 대소변을 3년간 친히 받아내고 갖가지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 심산유곡(深山幽谷)을 헤매다 죽을 고비를 몇번씩이나 넘기며 시탕(侍湯)으로 치병(治病)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뜰아래 단(檀)을 모아 분향기도(焚香祈禱)하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드리는 등 효성으로 간호한 지 2년여만에 완쾌되니 이웃과 친척의 칭송(稱頌)이 크고 조정(朝廷)에까지 알려져 순조(純祖) 4년(1804)에 효자 통덕랑(孝子 通德郞)으로 명정(命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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