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제 1절시실의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유물 11점은 모두 원광식 종장이 만든 레플리카 작품이다. 낙산사 동종처럼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손실된 부분이 많을 경우 이렇게 레플리카로 제작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복제품과는 다르다.
레플리카란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동일한 재료·방법·기술을 이용하여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원작을 재현하는 것으로, 미술, 공예 등의 많은 분야에서 행해진다. 원작자가 직접 만들지 않고 엄격한 감독하에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귀중한 작품의 복제를 위해서나 문화재의 형상과 색채를 복원하려는 목적으로 시도 되기도 한다. 원작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모방하여 만든 미술품의 경우는 리프러덕션이라 하며, 이것은 단순한 모사나 인쇄기술에 의한 복제와는 구별된다.
우리 박물관에 전시된 11점은 후세에게 남겨줄 소중한 자료로서 재해로 인해 소실되어가는 한국범종역사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상원사 종
- 한문명 : 上院寺 鍾
- 시대 : 통일신라 725년
- 높이 : 1670mm
- 구경 : 903mm
- 소장처 : 강원도 평창군 상원사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용뉴는 몸체에 비하여 매우 큰 편으로 타종에 놀란 듯한 큰 눈과 오똑 선 귀, 날카로운 뿔과 크게 벌린 입, 힘차게 천판을 딛고 선 발의 표현 등에서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음통은 5개의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연꽃무늬와 보상화 무늬로 수놓았다. 상대는 동일한 문양판을 연속적으로 찍었다. 중앙에 아래로 둥근 반원이 있는데 이 반원권 무늬는 신라종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다.반원은 테두리를 겹으로 둘렀는데 바깥 테두리에는 하트모양의 고사리무늬를 돌리고 안쪽 테두리에는 작은 능화꽃을 돌렸다. 이 반원 내부에 조그마한 주악비천 2구가 앉아서 왼쪽은 피리, 오른쪽은 쟁을 연주하고 있다.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은 4군데에 있다. 좌,우,아래 쪽에 각각 반원권을 하나씩 두고 그 안에 다시 비천을 새긴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하대는 상대와 유사한 형식으로 반원내부에는 작은 주악비천이 4구가 있으며 각각 취악기, 피리, 장고,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다.종신에는 주악천인상과 당좌를 번갈아 가며 새겼다. 종 좌우에 있으며 2구가 한쌍이 되어 나란히 구름 위를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왼쪽은 커다란 공후를 끌어안고 연주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천인상은 생황을 불고 있는데 무게가 없는 듯 가벼워 보이는 비천의 자세에서 하늘로 부터 하강하는 부드러운 동세가 느껴진다. 둘 다 나신인 상반신에는 영락을 드리웠고 팔과 허리 아래로는 얇은 천의를 걸쳤는데 영락과 천의들이 비천들의 몸을 휘감고 자연스럽게 하늘로 날리는 모습은 매우 유려하고 섬세하여 이 우아한 비천들의 자세를 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당좌는 종의 앞과 뒤에 하나씩 있는데 무늬들이 가느다란 선으로 섬세하게 메워져 절도 있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8잎의 연꽃잎에 구슬 무늬 띠를 돌려 마무리하고 바깥 구슬무늬 띠와의 사이에 가느다란 당초무늬를 채워 넣었다. 실물에는 천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개원13년 725년에 주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신라 성덕왕에 의하여 조성되어 산내 진여원(신라귀족자제들의 교육원)에 봉안되었다는 기사가 (월정사약사)중에 등장하며, 그 후 조선 1468년 안동 누문에 있던 종을 상원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영가지)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전까지는 안동의 누각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덕대왕신종
- 한문명 : 聖德大王神鍾
- 시대 : 통일신라( 771년)
- 높이 : "36"63mm
- 구경 : 22270mm
- 소장처 : 국립경주박물관
- 구분 : replica
- 재질 : 합성수지 ( frp )
- 위치 : 제1전시실 입구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종 가운데서 가장 큰 종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범종이다. 어린아이를 희생시켜 제작하였다는 설화로 인해 에밀레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 종은 신라의 제 34대 왕인 효성왕은 선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기원하고자 봉덕사를 건립하였고, 그 다음 왕인 경덕왕 역시 아버지인 성덕왕에 대한 효심으로 청동 12만근을 모아 이 절 안에 종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되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승하하였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왕위에 올라 봉덕사종을 완성하였다. 사찰의 건립에서부터 종의 완성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4년이며, 강력한 왕권 아래 진행된 역사적인 거사였다. 봉덕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게 되고, 이 종은 영묘사로 옮겨졌으나, 영묘사가 폐사된 후 경주성문종(慶州城門鍾)으로 사용되다가 후에 구경주박물관(舊慶州博物館)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한국종의 기본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으나, 하부의 종 구연부가 팔능(八陵)으로 되어있는 점과 천판(天板)의 주변에는 견대(肩帶)장식이 있는데, 이는 다른 신라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상대 아래쪽에는 연주를 배치해 연주문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보상화문(寶相華紋)을 조각하였다. 하대의 8개의 능부 중앙에는 연화문을 각각 1개씩 두었으며, 그 사이를 아름다운 보상화문으로 장식하였다. 종신(鍾身)에는 연꽃 위에 무릎을 꿇고 불전에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주위에는 보상화문을 조각하였고, 천의자락과 영락 등이 휘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라종에는 주악천인상이 시문되어 있으나, 이 종에서 나타난 공양좌상은 성덕대왕의 명복을 기원하고자 하는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운주지 소장종
- 한문명 : 雲樹寺 所藏 鍾
- 시대 : 통일신라(8세기)
- 높이 : 753mm
- 구경 : 440mm
- 소장처 : 일본 시마네현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용뉴는 75.3cm라는 체구에 맞게 새끼용처럼 작고 귀엽다. 입과 발은 종을 잡고 승천할 것 같은 기운이 아닌 종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듯한 인상을 준다. 용뉴에 비해 굵은 음통은 크게 상, 중, 하단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상, 하단에는 중앙부에 화문이 첨가된 앙.복련의 연판문을, 그리고 중단에는 천의를 옆으로 날린 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의 공양좌상을 저부조(底浮彫)로 시문하였다. 종신에 비해 상대는 폭이 넓고 그 외연을 화문이 첨가된 연주문대로 두르고 그 내부에 향로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게 배치한 2구씩의 공양자상을 새겨놓았다. 내부의 종유는 돌출되지 않고 납짝한 6엽의 화문좌형으로서 성덕대왕신종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보다 단순화된 점을 느낄 수 있다. 하대는 상대보다 폭이 조금 넓고 내부의 중심문양을 삼중권(三重圈)으로 구획된 반원형의 자식문양으로 반복 시문한 점이 다르다. 종신에는 2구 1조의 주악천인상이 부조되어 있다. 왼쪽상은 두손을 모아 입으로 횡적을 불고 있으며 다른 한상은 오른손을 머리위에 들어 배 앞에 놓고 요고를 치는 모습이다. 주악천인상에 보이는 율동적이고도 활달한 천의의 표현이나 볼륨 있는 신체에서 알 수 있듯이 상원사종, 성덕대왕신종 등과 연맥을 같이 하는 8세기 중엽~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당좌는 다른 범종의 당좌에 비해 자방이 몹시 크게 표현되고 외곽에 8엽의 연화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선림원터종
- 한문명 : 禪林院 鍾
- 시대 : 통일신라(804년)
- 높이 : 1220mm
- 구경 : 680mm
- 소장처 : 국립춘천박물관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1948년 양양(襄陽) 설악산에서 출토된 정원(貞元) 입년(804년) 명문을 갖고 있는 범종으로서, 출토된 지 2년 후인 6·25 전쟁 때 월정사와 함께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그 파편들이 국립춘천박물관에 보존된 범종이다. 우리 박물관에 소장된 종은 출토당시 황수영박사와 문화국 직원들에 의해 조사된 자료와 고증을 통해 국립중앙과학관과 원광식 종장이 3년여에 걸쳐 replica한 작품이다. 각부(各部)의 양식이 신라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용의 머리(龍頭)는 큰 입을 아래쪽으로 벌려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음통의 문양은 5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上帶)는 반원권(半圓圈)의 문양 12개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였고, 그 안쪽에는 연화문(蓮花紋)을 바깥쪽에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을 조각하였다. 하대(下帶)는 상대와는 전혀 다르게 위·아래쪽에는 연주문(蓮珠紋)을 두고, 그 안에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불상 19체(體)를 조각을 한 것이 특징이다. 상대와 인접한 연곽은 4개가 배치되었는데, 연곽대는 사다리꼴을 하고 있으며, 문양은 상대의 문양과 같게 하였다. 당좌(撞座)는 전후에 각 1개씩 2좌가 배치되어있다. 주악천인상(飛天像)은 2구가 한조로 되어 종체좌우(鍾體左右) 배치되어 있는데, 구름 위의 연화좌(蓮華座)에 앉아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고묘지 소장 종
- 한문명 : 光明寺 所藏 鍾
- 시대 : 통일신라(9세기)
- 높이 : 881mm
- 구경 : 510mm
- 소장처 : 일본 시마네현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1994년 일본 고묘지(光明寺) 측의 요구에 의해 replica된 작품으로 원명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나 비천의 자세, 종의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 종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9세기 종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건너간 후 3차에 걸친 추명에 따르면 고려 우왕 5년 (1379년)5월5일에 시마네현의 증선사(增禪寺)에 납입되었다가 30년 뒤인 1480년 11월29일 근처의 보덕사(報德寺)로 옮겨졌고, 다시 83년 뒤인 1492년 11월 현재의 고묘지로 옮겨졌다.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종은 전체적으로 긴 원통에 가까운 종신(鍾身)을 갖고 있으며, 실물의 음통(音筒) 윗부분은 파손이 되어 잃어버렸다. 상대에는 위·아래에 융기선을 돌리고 그 사이로는 1조의 당초문만으로 간략하게 장식하였고, 하대는 위·아래 부분에 연주문대를 돌리고 그 안에 반원권문양을 시문하였다. 연곽(蓮廓)은 상대와 인접하여 4좌가 배치되어 있다. 좌·우측 연곽대의 위쪽에는 당초문양의 바탕에 천부입상을, 그리고 그 밑에는 2조의 반월호선(半月弧線) 안에 동자좌상(童子座像)을 배치하였고, 하부 수평대는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당좌는 용의 방향에 따라 앞·뒤에 각 1좌씩 2좌의 원형당좌가 배치되어 있다. 주악천인상은 구름 위에 꿇어앉아 천의를 휘날리고 있는 모습으로, 왼쪽의 1구는 장고를 치고, 오른쪽의 1구는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청주(박)신라종
- 한문명 : 淸州(博)新羅鍾
- 시대 : 통일신라(9세기)
- 높이 : 780mm
- 구경 : 474mm
- 소장처 : 국립청주박물관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1970년도 청주시 운천동에서 일련의 금속공예품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뚜렷한 명문이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종의 형태, 문양 등이 신라종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신라종으로 보고 있다. 용뉴는 그 입을 천판상(天板像)에 붙이고 있으나, 섬약해보이는 얼굴과 가는 목으로 표현되었고, 음통(音筒) 역시 장식 없이 형식적으로만 처리되었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구획만을 아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으나 문양이 전혀 시문 되지 않은 점이 매우 독특하다. 연곽(蓮廓)은 상대 아래 붙어 있는데, 반원권(半圓圈)의 문양 안에 주악천인상을 조각하였고, 그 바깥쪽으로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으로 장식하였다. 연곽 안에는 연판으로 장식된 유좌(乳座)위에 융기돌출형을 한 연뢰(蓮雷)가 9개 배치되었다. 주악천인상은 연곽과 연곽 사이의 종신 중간쯤에 배치하였는데, 구름위에 앉아 천의를 날리며 비파를 연주하는 1구의 주악상과 그 반대편에는 합장한 모습의 천인상을 부조하였다.

덴린지 소장종
- 한문명 : 天倫寺 所藏 鍾
- 시대 : 고려(1011년, 현종 3년)
- 높이 : 871mm
- 구경 : 532mm
- 소장처 : 일본 마쓰에시 천륜사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원래 종의 이름은 회진사종(廻眞寺鍾)으로,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온 전통적인 고려 전기종(前期鍾)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종의 모양이 단정하고, 문양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용뉴의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으며, 천판(天板) 위에는 다른 종에서 찾아보기 힘든 연화문좌(蓮花紋座)와 운문좌(雲紋座)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는 6단의 문양구조를 갖고 있으며, 하대는 소용돌이 문양이 있고, 전후좌우(前後左右)의 4개소에 사화형(四花形) 연화문이 배치되었다. 오른쪽 연곽 밑에는 천개의 여래상이, 왼쪽에는 명문곽이 있고,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꽃과 악기를 배열했다. 당좌는 종신의 전후종복(前後鍾服)에 각각 1좌씩 2좌가 있고, 원형연화당좌(圓形蓮花撞座)이다. 당좌의 문양은 중앙에 8엽연화문(八葉蓮花紋)을 두고, 그 주위에 다시 8엽보상화문양(八葉寶相華紋樣)의 연판(蓮瓣)으로 장식하였다. 오른쪽에는 여래상(如來像)이 있는데, 천개(天蓋)를 갖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에 둘러싸여 연화좌에 앉은 모습이 매우 특징적이다. 고려전기 종에 나타나는 여래상으로는 이른 예이다. 여래의 좌우에는 횡적, 비파, 피리와 같은 악기가 천의에 감싸여 천상의 연주를 하며 날고 있는데 여래와 악기를 함께 혼용하여 조각하는 것도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엔세이지 소장종
- 한문명 : 圓淸寺 所藏 鍾
- 시대 : 11세기 전반 추정
- 높이 : 930mm
- 구경 : 494mm
- 소장처 : 일본 아사쿠라군 원청사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몸체에, 좌우의 당좌를 중심으로 천의가 화려하게 나부끼는 비천이 대칭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아름다운 종이다. 특히 비천의 돋을새김이 높아서 볼이 통통하여 천진하게 웃고 있는 듯하다. 하대와 연곽에는 섬세한 당초무늬를 둘렀는데, 당좌 또한 흔히 보이는 연꽃무늬가 아니라 당초무늬를 둘러 장식하였다. 상대에는 신라시대 종의 전통으로 이어져온 반원권 무늬를 돌렸다. 용뉴는 크게 구부려 ∩모양을 이루고 있고 입에 문 여의주는 천판과 닿아 있다.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 보이는 음통에도 연꽃무늬가 화려하다. 이 종과 같은 보살상의 지문판을 쓴 것으로 보이는 미지기인(水城院) 종은 소유자의 기증으로 현재 한국의 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圓淸寺略緣記」에는, "160"0년에 같은 지역 조후쿠지(長福寺)에 있던 종을 구로다(黑田)라는 사람이 엔세이지에 기증했다고 한다.

태안사종
- 한문명 : 泰安寺鍾
- 시대 : 1581년
- 높이 : 965mm
- 구경 : 657mm
- 소장처 : 전남 곡성 태안사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종신 명문에 의하면 천순 원년 (1457년)에 만든 종이 파손되어 만력9년(1581)에 다시 주성하였다고 한다. 종의 형태는 단룡과 음통으로 된 용뉴에 입상대를 갖춘 고려 후기 종 형식에 조선종 특유의 문양들로 표면을 장식하였다. ∩모양으로 구부러진 용은 사실적이면서 활기찬 모습이며, 연꽃무늬로 감싼 상대 아래에는 새로이 옴자로 된 원형범자가 덧붙여 있고, 연곽은 상대에서 떨어져 종복(鍾腹)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좌는 가운데에 8엽의 연꽃무늬를 살짝 도드라지게 하고, 주변에 파도무늬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게 처리한 다음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마무리하였다. 하대는 종구에서 13㎝정도 올라온 부분에 돌출한 횡대를 두고 그 사이로 꽃잎에 살짝 빗금을 친 연화당초무늬로 장식하였다.

해인사 홍치4년명종
- 한문명 : 海印寺 弘治四年銘 鍾
- 시대 : 조선(1491년, 성종 22년)
- 높이 : 848mm
- 구경 : 570mm
- 소장처 : 경남 합천 해인사 성보박물관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이 종은 인수왕비와 인혜왕비의 발원으로 해인사 대적광전이 중수되면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인사 대웅전의 종가에 걸어 예불에 사용함으로써, 문양이 우수하고, 존엄성이 감도는 아름다운 종이다. 종의 정상(頂上)에는 두 마리의 용(雙龍)으로 된 용뉴가 있으며 용두는 비교적 작은 편이나, 두 눈과 코, 입 등은 사실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발가락은 날카롭게 표현되었으며, 이전의 신라종, 고려종과는 다르게 5개이다. 음통(音筒)은 없으나, 천판(天板) 가운데 부분에 종을 주조할 때 일부로 만들어 놓은 구멍이 하나 있다. 천판은 반원호형(半圓弧形)을 하고 있어 둥글게 보인다. 견대(肩帶)는 삼산형(三山形)의 귀꽃문양과 연화문대(蓮花紋帶)로 장식되었으며, 상대(上帶)는 만들지 않았다. 중대(中帶)는 3개의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신(鍾身)의 가운데 부분에는 3조선을 두르고, 그 위를 화려한 당초문(唐草紋)과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장식하였으며, 3조선 아래 부분은 4좌의 운룡문(雲龍紋)으로 장식하였다. 운룡문의 용두는 왼쪽을 향하고 있으며, 운룡문과 운룡문 사이에는 여의주를 하나씩 배치하였다. 한국종에서 운룡문이 나타난 것은 이 종이 처음이며, 이후 조선 후기의 종에서 간간히 등장한다. 운룡문 아래로는 노도문(怒濤紋)을 둘러 장식하였다. 하대(下帶)는 노도문 바로 아래에 형성되어 있으며, 아래 부분은 태조선으로 둘러져 있고, 하대 밑 부분은 문양이 없는 소문(素紋)으로 이루어져있다. 연곽(蓮廓)은 종신의 전후좌우 방향으로 4좌를 배치하였으며, 독립된 사각형을 하고 있는 연곽대(蓮廓帶)는 당초문으로 장식하고,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보살상(菩薩像)이 4구 있는데,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머리에 두광(頭光)을 갖추어,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룡사종
- 한문명 : 金龍寺鐘
- 시대 : 조선(1670년, 현종 11년)
- 높이 : 1003mm
- 구경 : 642mm
- 소장처 : 김천 직지성보박물관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조선 후기 승려 주종장을 대표하는 사인(思印)스님이 주성한 종이다. 그가 제작한 김룡사 종을 비롯해 수타사, 청룡사, 화계사, 통도사, 청계사, 강화동종 등이 남아있다. 김룡사 종은 사인스님이 만든 종 가운데 가장 앞 시기에 해당된다. 용뉴는 단룡의 종고리와 연꽃으로 마무리된 음통(音筒)은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당좌(撞座)는 수타사(壽陀寺)의 종과 같이 가운데 부분을 연화문(蓮花紋)으로 장식하였고,4좌의 당좌는 구슬무늬를 경계로 안에는 평면적으로 도안화된 6잎의 연꽃무늬가 있고 바깥쪽으로는 연꽃잎으로 한번 돌려 마무리하였으며, 다시 사방에 2장의 잎사귀를 결합한 화려한 문양을 덧붙여 장식하였다. 상대는 사각형 구획을 나눠 범자문(梵子紋)으로 장식하였으며 하대는 용문(龍紋)으로 장식하였다. 상대 밑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을 4좌 두었으며,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연꽃봉오리를 쥐고 구름위에 서있는 보살을 배치하였다.

수타사종
- 한문명 : 壽陀寺鍾
- 시대 : 조선(1670년, 현종 11년)
- 높이 : 1100mm
- 구경 : 740mm
- 소장처 : 강원도 홍천 수타사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수타사 종은 사인 스님이 김룡사 종을 만들고 3개월이 지난 뒤에 제작한 종이다. 종신의 문양은 김룡사 종의 상대, 연곽, 보살상, 하대 문양의 지문판을 그대로 사용했는지 무늬와 크기가 동일하다. 다만 당좌는 커진 종 크기에 맞추어 다시 도안했는지 문양이 커지고 원안의 연꽃잎 수가 8잎으로 늘어났으며, 원 밖의 장식은 잎사귀 3장이 결합되어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좀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용뉴는 정면을 바라보며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활짝 웃는 듯 하고, 음통 부분을 용의 꼬리가 휘감은 듯 표현하였다. 하대 역시 기존에 파도무늬와 함께 등장하던 용을 보상화와 연꽃사이에 노니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디자인하였다.

완주 송광사 종
- 한문명 : 完州 松廣寺 鍾
- 시대 : 1716년 (康熙 55年)
- 높이 : 1060mm
- 구경 : 722mm
- 소장처 : 전북 완주 송광사
- 구분 : replica
- 재질 : 청동 ( bronze )
- 위치 : 제1전시실
고려후기 범종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활기찬 용의 모습과 거북이가 표현된 음통, 연곽 테두리와 하대 윗부분에 작은 원을 붙여 마무리한 아기자기한 장식, 새침한 표정의 보살등 독특한 표현이 장식되어 있다.
- 문화관광과 문화시설운영팀 김자람 (043-539-3850)
- 최근 업데이트 : 2016-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