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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및 연혁

유래 및 연혁

궁동

궁동은 중국의 원나라 황제의 황후 기씨가 탄생한 곳이다. 기 황후는 상산의 아름다운 정기를 타고 옥녀봉의 옥녀와 같은 어여쁜 모습으로 이 고장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몸이 장대하여 건장한 홀필렬 황제가 중국천지를 두루살펴 황후감을 구했지만 상대자가 전혀 없었는데, 이때에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지역을 살피어 보니 한 지역에 아름다운 서기가 어리고 있었다. 홀필렬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측근자에게 물어보니 저기에 반드시 귀인이 있다고 말하였다. 홀필렬은 매우 기뻐하면서 서기가 어린 옥녀봉 밑으로 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기씨 처녀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움직이며, 기처녀는 기골이 장대한 여자였다. 홀필렬은 매우 기뻐하며 기씨 댁을 찾아가서 기처녀 부모에게 큰절을 하고 사위로 삼아줄 것을 간곡히 졸랐다. 기처녀 부모들은 처음에 반대하였으나 기처녀가 시집가기를 은근히 바라는 기색이라 홀필렬은 기처녀를 황후로 맞이하였다. 홀필렬은 기황후의 부모를 위해 그가 탄생한 지역에 웅장한 궁궐을 세웠다. 지금은 밭이 되었지만 지금도 거기에 가보면 당시 쓰였던 주춧돌이 아련히 남아있고 부서진 기왓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기왓장을 살펴보니 푸른색과 붉은색이 있는데 원형은 살필 수가 없고 기와를 구울 때에 벼 헝겊을 깔고서 만든 모습이 엿보인다. 궁골 동네에서 동쪽으로 500m 가량 나오면 큰 길가에 어수정이란 우물이 있다. 기 황후가 출가 전에 마셨다하여 어수정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궁동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또 있다. 어느날 아침에 홀필렬이 세수를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까치가 두어번 울더니 세수그릇에 단추 한 개를 떨어뜨린다. 하도 이상하여 그 단추를 보니 옥으로 만든 귀한 물건이었다. 홀필렬이 세수를 다한 후에 만간을 쓰려고 하니 옥관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기황후가 세수를 할 때에 까치가 두어번 울고 갔다. 세수를 한 뒤에 저고리를 입으려 하니 단추가 없어졌다. 그 단추는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단추였다. 며칠 후 세수를 하는데, 또 까치가 두어번 울더니 세수물 그릇에 옥관자를 떨어뜨렸다. 이상한 징조라 하면서 옥관자를 비단헝겊에 쌌지만 이상한 서광이 비취고 있었다. 기 황후가 달고 다니던 옥단추에서도 서광이 비치고 있었는데, 옥관자도 마찬가지였다. 홀필렬은 천하에 명령을 하여 옥관자를 찾으라고 하였으나 찾을 수 없어 점성가를 불러 알아보니 점성가가 말하기를 "옥관자는 동쪽으로 갔는데 황제 폐하와 인연이 있는 어느 처녀가 가지고 있사옵니다"하니, 홀필렬은 곧 부하 수 백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향하였다. 서기가 어리는 곳으로 가니 옥녀봉 밑이었다. 그 동네에 가서 나이 많은 노인에게 물으니 기씨 처녀가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홀필렬은 기씨를 찾아갔다. 기처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 기처녀의 단추는 홀필렬이 가지고 있고 홀필렬의 옥관자는 기처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홀필렬은 중국 천지를 두루 살피면서 황후가 될 처녀를 구했지만 마땅치 못하여 고민하던 중 마침 기처녀를 보니 육척 장신이요, 기골이 장대하고, 행동이 호걸 남자와 같은 뛰어난 여자였다. 홀필렬은 그 동안 본국 여자와 수차 혼인을 하였으나 첫 날밤만 지내면 여자는 모두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천생연분인 배필을 구하기 위하여 고민하던 중 여기서 기처녀를 맞이하여 배필을 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진천군지]

궁골의 어느 전설

아주 오랜 옛날에 옥녀봉 밑에 궁골이라고 하는 마을에 기황후의 한 친척이 살고 있었는데 남이 부러워 할 정도로 호화스럽고 넘치게 살았다. 그런데 마음이 후덕하지 못하고 구두쇠여서 남돕는 걸 전혀 몰랐다. 그러던 중 하루는 이름난 노승이 와서 염불을 외며 시주를 간곡히 청했다. 주인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도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이어 세 번을 방문하여 시주를 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그리고 네 번째 와서 주인을 찾으며 도승이 하는 말이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오늘 해를 못넘길라." 하니 주인이 이상히 여겨 도승에게 물으니 도승이 하는 말이 "집터는 천지간에 제일이라 자자손손 창성하련만은 집 앞에 바위가 있어 팔영장 벼슬이 되지를 못하는 구나 아깝도다"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주인은 그말을 듣고 그날부터 바위를 깨부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바위를 깨는데 그 속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기어나와 도망을 가고 흰 학이 날아가 버렸다. 그날부터 주인은 병이 들어 죽고 말았고 그 집안에 연이어 재앙이 닥쳐 송두리째 망해버리고 말았다. 너무 욕심이 많고 거만했기 때문에 이런 화를 당하고 말았다. [진천군지]

바위가 된 효자 덕온

기암부락 입구에는 더니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사람모습을 한 작은 바위가 올려져있다. 이 바위에는 얽힌 전설이 있는데 옛날 이 마을에 덕온이라는 아이가 살았다. 이마가 툭 튀어나오고 머리가 몹시 커서 '덕온이 바위 덩어리'하고 놀림을 받기가 일쑤였다. 눈은 마치 소처럼 커서 항상 깜박거리고 다녔다. 그렇게 못생긴 외모에 반해 마음씨는 무척 착하고 글재주 또한 뛰어나서 근처 글방에서는 아무도 덕온이를 따르지 못하였다. 덕온이 부모들은 부자는 아니였지만 열심히 사는 농부들이었다. 그리고 행실 착하고 글재주 뛰어나며 효성이 지극한 덕온이를 기쁨으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늙으신 아버지가 병에 걸려 눕게 되었는데 덕온이가 지극 정성으로 시중을 들었으니 보람도 없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으시다 몸져 누워서 덕온이는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약을 지어다 어머니를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그 날도 덕온이가 어머니의 병환을 걱정하고 있는데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했다. 그래 덕온이가 어머니가 병환 중에 계시고 집이 빈곤하여 드릴것이 없으나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해주시면 어떻게 해서라도 시주를 올릴터이니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여 스님이 덕온의 효성에 감복하나 머뭇거리자 덕온이 다그쳤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길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면 험한 산이 있는데, 그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의 암벽에서 자라는 생초가 효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험하고 멀 뿐만 아니라 맹수와 독충들이 있는 곳이라......"하니 덕온이 고맙다 절을 하며 이 은혜 잊지 않고 시주하겠노라 맹세하며 그 길로 바로 떠났다. 덕온이가 7일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여 그 암벽에 도착하니 생초가 있어서 그것을 뿌리채 뽑아서 집으로 내달려 마을 입구에 다다랐는데 그의 친구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어머니가 자네 오기만 기다리다 오늘 아침에 운명하셨네."하였다. 덕온은 푸른 하늘에 날벼락이라. 애써 구 한 풀을 손에 꼭 쥔채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후로 사람들은 덕온이의 효성에 감복하여 이 바위를 '덕온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덕온이가 변하여 오늘날의 더니바위가 되었다 한다. [진천군지]

어느지관의 이야기

아주 먼 옛날 하신 부락 주막에 어느 지관이 머물고 있었는데 같이 방에서 머무는 젊은이가 정성껏 싼 보자기를 끌어안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지관이 이상해서 그 연유를 물으니 부모님의 유골을 모시고 있는 데 좋은 묘자리를 찾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닌다고 말하였다. 이 말에 그 지관은 자기가 지관이니 내일 명당자리를 찾으러 같이 가자고 안심을 시키고 잠을 이루었다.이튿날 지관과 젊은이는 마을 둘레의 산을 살피며 이리저리 명당을 찾았다. 한나절이 다되어 마을 앞산에 도착했을 때 지관이 별안간 놀라며 명당자리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이 자리에 묘를 쓰면 3대에 걸쳐 정승을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마을이 망하니 어찌하나'하고 말하니 젊은이가 자기 욕심에 차서 지관의 만류도 뿌리치고 밤에 몰래 올라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땅을 열심히 파는데 얼굴에 무엇이 튀어서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분명하였다. 놀란 젊은이는 얼른 부모님의 유골을 그곳에 묻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랴부랴 돌아왔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먹장 같은 시꺼먼 구름이 몰려오고 소나기가 퍼붓더니 이번에는 콩알 만한 우박으로 변해 천둥과 함께 온 천지를 뒤집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연유를 몰라서 갈팡질팡할때 마을의 연로하신 노인이 점장이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대통을 흔들어대던 점장이가 하는 말이 어떤 놈이 용의 허리를 파헤쳐 용이 노해 천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장이와 마을 사람들이 마을 앞산 구비에 가서 여기저기 찾아 헤매고 있는데 뻘건 흙이 둥그렇게 덮여 있는 곳이 눈에 보였다. 사람들이 땅을 파헤치니 온통 피로 물들어 있고 두 개의 유골이 나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유골을 팽개치고 흙을 덮어 떼를 입혀 주었더니 소나기와 우박이 언제 내렸나는 듯 뚝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이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후 소문을 들었는데 이 명당을 잡아준 그 지관은 이름 모를 병으로 앓다가 죽었고 이곳에 묘를 썼던 그 젊은이도 패가망신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마을 앞산에 있다는 명당자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나 마을사람들이 완강히 반대하여 그냥 돌아간다고 한다. [진천군지]

최씨형제 이야기

먼 옛날 개미저리 마을 외딴터에 최씨 집안의 두 형제가 살았다. 형은 서당에서 공부에 열중하는데, 동생은 등너머로 공부하는 정도이고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 외쪽이었다. 그러나 힘이 세고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효성도 지극하여 하루는 어머니가 뙤약볕 아래서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산에 올라가서 바위를 안고 나무를 뽑아 그늘을 만들어서 어머니를 바위 위에 앉아 나무 그늘 밑에서 시원하게 바느질을 하실 수 있게 한 일도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형이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다. 외쪽이도 자꾸만 따라 간다고 우겼는데 형이 따라 오지 말라고 하면서 먼저 갔다. 그러나 외쪽이라 부지런히 걸어서 형의 뒤를 삽시간에 뒤쫓아갔다. 해가 기웃기웃할 무렵에 형을 만났는데 형은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산길을 걸었다. 사방은 어둡고 인가는 보이지 않는데 멀리서 불빛이 보이는 것이었다. 형제는 그곳으로 부지런히 걸어가서 주인을 부르니 머리가 허연 부인이 나와 반갑게 맞 아 주면서 웃방에 가서 자라고 하였다. 두 형제는 고맙다고 하고 웃방엘 들어갔다. 형은 피곤해서 코를 드르렁거리며 잠을 자기 시작했으나 외쪽이는 누워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 때 어디서 쿵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랫방에서 남자 말소리가 들리는데 "어디서 인내가 난다." 한다 그러니까 그 부인이 "웃방에 두 마리를 가두어 놓았소"한다. 남자는 그 즉시 시퍼런 칼을 숫돌에 갈기 시작하였다. 외쪽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형을 깨우고 한쪽 팔로 벽을 밀어서 형의 손을 자고 멀리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날리 훤할 때쯤 해서 마을이 나왔는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듣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잘빠져 나왔다고 그곳은 늙은 호랑이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두 형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을 퍽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 뒤 형은 과거에 급제해서 외쪽이 동생과 백성들을 고루고루 살펴가며 의좋은 형제로 일생을 마쳤다한다. [진천군지]

노비가 만들었다는 용비석

옛날 턱골이란 동네에 고성 이씨인 이대감이 살았다한다. 이대감은 마을 뒷산 중턱에 으리으리한 기와 집을 짓고 많은 땅과 노비를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세도를 부리며 행복하게 살아오다가 칠십 노령에 들면서 병이 들어 다시는 소생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때에 열일곱 살인 노비가 막 장가를 들어 재미있게 사는데, 당시의 풍습에 상전이 죽으면 장례때 노비도 같이 순장을 하는 풍습이 있어 대감이 죽으면 젊은 노비도 같이 죽을 판이었다. 젊은 부부는 대감마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하겠으니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빌었다. 두 내외의 지극한 병 간호에 감동한 대감은 두 부부에게 "너희가 나의 묘 앞에 세울 비석을 육개월 안에 만들어 오되 내 마음에 들면 너희들을 노비에서 풀어 자유롭게 살게 해주마"하니 두 부부는 그 이튿날로 여장을 차려 강원도로 떠나 육개월 만에 남자 노비는 귀수와 비신을 지게에 지고 여자 노비는 이수를 머리에 이고 대감의 집에 도착하였다. 대감이 비석을 보니 너무 훌륭해서 묘 양쪽에 세울 욕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이수에 새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여의주를 돌려보니 여의주가 돌지 않았다. 대감은 여의주가 돌지 않으니 여의주를 돌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노비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한다.
그후 대감이 죽은 뒤에 묘앞에 비석을 세우고 비석 앞에 노비의 묘를 썼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곳에 가보면 대감과 노비의 묘가 아래 위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천군지]

장수굴

신라 진평왕때 김유신 장군의 나이 젊을 때 고구려와 백제, 말갈이 신라 국토를 침공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적을 토평할 큰 뜻을 품고 혼자 이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맹세하여 기도하기를 "적국이 무도하여 우리 국토를 침공하여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저는 한낱 미신으로 재량과 용기가 없사오나 화란을 없앨 뜻을 품고 있으니 하늘은 저의 뜻을 살피어서 저에게 힘을 빌려 주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였더니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노인에게서 무예를 닦았다 한다. 또한 장수굴 아래에는 굴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으며 굴 옆에 샘이 있는데 굴안에서 장군이 공부를 할 때 이 물을 마셨다한다.또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이 굴이 울었으며 그대까지 울창하던 산이 하루만에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다. [진천군지]

백원서원

노원리에 서원 부락이 있는데 이 곳은 백원서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으로 탁송재 선생이 제자들을 가리치던 곳으로 여기에 효행과 훌륭한 일을 한 이종학 선생, 모암 김덕숭 선생 이번 선생 향원 이위 등 네분을 모셨다. 현종 을우년에 신잡 선생이 장골마을 처가댁에 호상차 오셨다가 산 좋고 물 좋은 이 동리에 머물어 진천 선비들과 선생님 노릇을 하였다. 위의 네 분을 모신 서원을 짓고 강당을 지어 직접 가르쳤으며 많은 학문이 발달하였는데 고종 16년에 훼철이 되어 지금은 그 자리에 쓰러진 비석 하나만 남아있다. [진천군지]

용초암

이월면 노은리 서원말 뒤산에는 용이 솟아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멍석바위가 있다. 멍석바위이새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용초암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도 자국이 남아있다. 서원말 뒷산은 명산이라고 소문이 나서 치성드리러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제보자 : 서원말 김준암(여,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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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업데이트 : 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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