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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및 연혁

유래 및 연혁

생거진천사거용인

생거진천사거용인

옛날에 진천 어느 생원의 딸이 용인으로 시집가서 아들을 낳고 살다가 남편이 죽어서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시집에 두고 진천으로 개가를 하여 아들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용인에 두고 온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편 용인의 아들이 장성하여 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진천에 찾아왔다. 진천아들은 안된다고 하였다. 서로 싸우다가 용인의 아들이 진천의 원님에게 소장을 내어 해결해 달라고 하였다. 고을 원님은 고심끝에 생전에는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에서 제사 지내라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居龍仁)의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서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 제보자 : 진천읍 가산리 가암 마을 김용구(남, 78), 이규복(남, 80)

거럭말

가산리 가실 마을 큰 길가 옆의 산이 옛날에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이씨와 구씨가 집성을 이루고 살았는 데 동네가 평야를 끼고 있어 풍요로웠으나 큰 길가에 위치해서 도둑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산이 된 그 곳을 파보면 토기와 기와장이 나온다고 한다. 도둑 때문에 거덜났다고 해서 [거럭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제보자 : 진천읍 가산리 가암 마을 김용구(남,78), 이규복(남, 80)

제비명당

진천의 잣고개 중턱 북쪽 방향에서 우측을 보면 길상사가 소재한 산이 있는데, 그 산이 내려 뻗기 시작한 곳이 제비 명당이고, 정면으로는 일명 굴바위라 불리우는 양달이 보이는데 이 산을 구렁이 명당이라고 한다. 옛날 어느 집안에서 이 제비 명당에 묘를 쓰고 여덟 명의 정승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정승이 여덟이어도 산소에 석물을 한 개도 세우지 않았다. 하루는 이곳을 지나던 어느 지관이 그 산소 자리를 보고 이 자리는 제비 명당이므로 장군석, 촛재석, 비석 등 석물을 해 놓아야 제비가 날아가지 않고 정승이 계속 생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지관의 말대로 석물을 해 놓자마자 그날부터 정승이 죽기 시작하여 한달 동안 집안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 망해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 지관이 이곳을 지나다가 그 제비 명당의 묘를 보고 하는 말이 이 자리는 제비 명당이므로 석물을 해 놓으면 제비가 날지 못하여 맞은 편에 있는 구렁이 명당의 구렁이가 제비를 잡아 먹어서 하루 아침에 집안이 망했을 거라고 말하며 지나갔다고 한다.

굴을 파면 번개치는 부흥산

옛날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이 곳을 지나다 근처 주막에서 병사들과 쉬었다. 쉬면서 이 동네에 무슨 좋은 얘기가 있냐고 물으니 한 노인이 말하길 "부흥산에 가서 굴을 파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이 3일 동안 먹을 양식을 살 수 있는 금이 나온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금을 캐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자 이여송이 얼른 굴을 파라고 하였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군사들은 굴을 파기 시작하였는데 한 자도 못파서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면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번개가 치고 벼락에 군사들이 맞아 죽었다. 그리고 굴안의 커다란 황구렁에게 물려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놀래 도망갔다. 이때부터 부흥산에 굴을 파면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자료관리 담당자
  • 진천읍 총무팀 김태완 (043-539-8307)
  • 최근 업데이트 :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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