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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김유신탄생지와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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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김유신탄생지와 태실

진천 김유신탄생지와 태실 전경 이미지

  • 지정 : 사적 제414호(1999.6.11)
  • 시대 : 삼국시대(595년)
  •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이미지 확대보기 VR 보기 찾아오시는길

이 곳은 홍무대왕 김유신(595~673)이 탄생한 곳으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3손이다.

김유신 장군은 만노군 태수(萬弩郡 太守, 만노 : 진천의 옛이름) 김서현(金舒玄)장군의 아들로 진평왕 17년(595년)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15세 되던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나당연합군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668년)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흥무대왕 으로 추봉되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워지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 곳에서 북동방향 300m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과 말달리기를 했다고 전해오는 치마대와 태실은 해발 461.8m의 산정상에 원형으로 석축이 있고 그 주위에 경사면을 에워싼 길이 216m, 높이 1-1.3m규모의 석축이 산성처럼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 나라 태실의 최고형식에 속하는 중요 유적이다.

이용정보
  • 입장료 : 없음
  • 주변명소 : 연곡리 석비, 보탑사, 길상사, 정송강사
  • 숙박시설 : 진파크여관, 봉화장여관
  • 음식점 : 연곡가든, 풍경소리
유래 및 설화

김서현(金舒玄) 장군은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장군(將軍)으로 가락국(駕洛國)의 시조(始祖)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세(世)손이며 장군(將軍) 무력(武力)의 아들이고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이다. 일명(一名) 소연(消衍)이라고도 하였으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시조(始祖)인 가락국(駕洛國)의 마지막 구해왕(仇亥王)(혹은 구형(仇衡)이라고도 함)이 532년(新羅 法興王19)에 나라를 들어 신라(新羅)에 부항(附降)하고, 아버지 무력(武力)은 신주(新州)(廣州)도(道) 행군총관(行軍總管)이 되었으며, 554년(진흥왕 15)에 백제(百濟)의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沃川)을 공격하여 왔을 때 적을 막아 성왕(聖王)을 전사(戰死)시켰으며 적군 일만여 급을 베는 공을 세웠다. 김서현(金舒玄)은 벼슬이 소판(蘇判)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粱州諸軍事)에 이르렀으니 소판(蘇判)은 잡찬이라고도 하여 진골(眞骨)만이 받을 수 있는 직위로 신라(新羅)에서 가락국(駕洛國)의 왕실(王室)에 진골(眞骨)의 대우를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량주제군사(大梁州諸軍事)란 중국식(中國式)인 벼슬 이름으로 이는 금관가야(金官伽倻)를 포함한 낙동강(洛東江) 하류(下流)일대의 지방군주(地方軍主)를 말하는 것으로 그의 본 고향의 군정관(軍政官)이라 하겠으니 정책적인 배려라고 할 것이다.

처음에 김서현(金舒玄)이 진흥왕(眞興王)의 아우인 입종(立宗)의 아들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을 우연히 기회에 길에서 만나 눈짓으로 꾀어 중매도 없이 결합하였다. 金舒玄이 만노군(萬弩郡)(鎭川) 태수(太守)가 되어 만명(萬明)과 함께 떠나게 되었다. 숙흘종(肅訖宗)이 그제야 비로소 자기 딸이 야합한 것을 알고 딸을 미워하며 다른 집에 가두고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그 집 문간을 때리니 지키는 사람이 놀란 틈을 타서 만명(萬明)은 들창문으로 빠져나와 드디어 서현(舒玄)과 함께 만노군(萬弩郡)으로 갔다. 혈통(血統)을 존중하는 엄격한 신라왕실(新羅王室)이었지만 이 사랑은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 하겠다.

이것으로 인연하여 서현(舒玄)이 높은 벼슬과 중한 직책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을 맡게 된 것도 이 뒤의 일이라고 하겠다. 김서현(金舒玄)이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熒惑)(火星)과 진성(鎭星)(土星) 두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만명(萬明)도 신축일(辛丑日) 밤에 한 동자(童子)가 금갑(金甲)을 입고 구름을 타고 당중(堂中)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얼마 후에 임신하여 20개월만에 아기를 낳았다. 이름을 지으려고 할때 부인(夫人)에게 말하기를 "내가 경진일(庚辰日) 밤에 길몽(吉夢)을 꾸어 이 아이를 얻었으니 경진(庚辰)으로 이름을 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예법에 일월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 하니 지금 경(庚)은 유자(庾字)와 서로 같고 진(辰)과 신(信)과 소리가 서로 가깝다. 더구나 옛날 어진 사람에게도 유신(庾信)(中國 北周의 사람)이라고 했으니 어찌 그렇게 이름하지 아니하랴?"하고 드디어 이름을 유신(庾信)이라 하였다.

지금 진천(鎭川)에는 김유신(金庾信)의 태(胎)를 묻은 태령산(胎靈山)(吉祥山)이 있다. 뒤에 양주총관(良州總管)이 되어 여러번 백제(百濟)와 싸워 공을 세우고 629년(眞興王 51)에는 고구려(高句麗)의 낭비성(娘臂城)을 함락시켰다. 이 때에 아들 김유신(金庾信)도 종군(從軍)하였다.

김서현(金舒玄)의 딸 문희(文姬)는 뒤에 김춘추(金春秋)의 부인이 되었으니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비(妃) 문명부인(文明夫人)이다

찾아가는 길
  • 승용차 : 중부고속도로 진천 I.C를 통하여 진입 [서울 기점 1시간 30분 소요]
  • 대중교통 : 서울 동서울 및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시부터 19:50분 까지 운행 [1시간 30분 소요]
  •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 06시50분부터 20시20분까지 수시운행 [4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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